외국 작가나 다른 나라 책을 즐겨보는 편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많이 읽는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책을 들었다가 공감이 안 가는 탓에 다시 내려놓은 적이 적지 않아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사용하는 언어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시험에 나온다고 해서 몇 권 읽었던 세계명작도서가 다 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겠지만 제 기억 속에 읽어보고 싶은 책으로 등록돼 있던 책이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는 소설입니다.
일본인인 작가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입니다. 아내는 살인 사건이 항상 등장하는, 붉은 색이 가득한 그의 소설이 정말 흥미진진하다고 했습니다. 저와는 취향이 조금 많이 다릅니다. 저는 그의 추리소설을 단 한 권도 읽어보진 못했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통해서 그가 쓴 다른 소설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쇼타, 고헤이, 아쓰야는 환광원이라는 같은 보육원 출신으로 빈집털이범들입니다. 경찰의 눈을 피해 우연이 묵게 된 “나미야 잡화점”에서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잡화점은30여 년 전의 과거와 이어진 공간이었습니다. 과거의 사람들이 고민을 적은 편지 몇 통을 받게 되고 빈집털이 3인방은 얼떨결에 그들의 고민 상담을 해줍니다. 올림픽 출전을 앞둔 펜싱선수, 가업과 자신의 꿈 사이에서 고민하는 뮤지션, 부모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으로 자신을 내던지려는 중학생, 돈을 많이 벌어 조부모께 보답하려는 사람. 고민거리 하나하나가 우리 주변에 실재할 것만 같았습니다.
모든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제각각이고 흩어져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고리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그 연결 고리는 나이야 잡화점으로 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것이 있습니다. 책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각각의 이야기가 연결되어 가는 걸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거기에 작가의 담백하고 이해가 쉬운 문체가 이야기의 공감과 몰입을 높였습니다. 455쪽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쪽수였음에도 책장을 넘기는 것이 무겁지 않아 좋았습니다.
물론 공감이 안 가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고스케’라는 인물의 이야기인데요. 중학생이던 당시 자신의 인생을 부모의 결정에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무작정 세상으로 자신을 내던진다…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가족이란 어떤 상황이든 함께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고스케는 본인의 앞날이 더 중요한, 매우 독립적인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나미야 잡화점 속 여러 고민들을 보면서 우리의 인생은 백지와도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도 가능합니다. 미래는 모두 지금의 내가 하기에 달린 것이지요. 이야기 속 인물들은 나미야 잡화점으로부터 조언을 구하고 얻지만 선택은 결국 그들 자신 몫이었습니다. 책에서는 모두가 바라는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현실은 다를 수도 있을 겁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 건 중요한 것은 현재의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게 아닐지…
나미야 잡화점 주인의 마지막 상담 편지의 여운은 꽤 오래갈 것 같습니다.
이름 없는 분에게.
어렵게 백지 편지를 보내신 이유를 내 나름대로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건 어지간히 중대한 사안인 게 틀림없다, 어설피 섣부른 답장을 써서는 안 되겠다. 하고 생각한 참입니다.
늙어 망령이 난 머리를 채찍질해 가며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결과, 이것은 지도가 없다는 뜻이라고 내 나름대로 해석해 봤습니다. 나에게 상담을 하시는 분들을 길 잃은 아이로 비유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지도를 갖고 있는데 그걸 보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마 당신은 그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것 같군요. 당신의 지도는 아직 백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정하려고 해도 길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누구라도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겠지요.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상담 편지에 담장을 쓰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멋진 난문(難文)을 보내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나미야 잡화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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