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 쓸거리

빵집 사장님은 건물주일까?

CreamPPang 2022. 6. 21. 17:00

 집 근처에 작은 빵집이 하나 있습니다. 치즈식빵, 밤식빵, 시나몬식빵 등등 수제 식빵 전문점이고 맛이 썩 괜찮습니다. 아침 7시쯤 출근길 길에 보면 사장님은 열심히 반죽을 하고 계십니다. 평소에는 일주일에 월요일만 휴무고 나머지 문을 여십니다. 그런데 종종 한 달 넘게 문을 닫는 경우가 있어요. 어제 지나가다 빵집 문 앞에 붙은 안내문을 보았습니다

하계휴가 6.20~7.31

무슨 휴가를 한 달 반씩이나!’ 하는 생각이 딱 들었어요. 월급쟁이인 제 입장에서 참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다른 세상의 휴가기간입니다. 저는 기껏해야 3, 그것도 토요일, 일요일 포함하고 월요일 연차내야 가능한 단 3일이 고작인데…… 그 이상은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결혼, 출산, 장례와 같은 경조사가 아니고서는 말이죠.

 

빵집 사장님의 길고 긴 휴가기간 안내문을 보고 납득이 갈 만한 이유들을 끄집어 내 봅니다. 집 안에 일이 있으신가? 어디 먼데로 제빵연수라도 가시나? 빵 만들다 관절이 안 좋아져서 오래 쉬시는 건가?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오르다 갑자기 빵집이 들어 서 있는 건물 전체가 눈에 들어옵니다. 연식이 느껴지는 흰색 타일의 아담한 3층짜리이고 그 중에 1층의 절반이 빵집입니다.

 

아무리 동네 골목의 작은 건물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오가는 1층이면 자릿세가 적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한 달씩 장사를 않고도 월세를 감당할 수 있다는 건 이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분 말고는 없지 않을까요? 그 분은 바로 건물주”. 건물주가 아니고서는 한 달 넘게 가게 문을 닫을 어마어마한 결단을 내리기가 어려울 거 같습니다. 건물주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도 긴 휴가에 대한 부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네요. 언제든 자유롭게 본인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말이죠. 그런데 너무 단편적으로 생각하는 건 안 될 것 같습니다. 자유로운 시간을 갖기 위해 하루를 훨씬 더 열심히 보내셨을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호수 밖에서의 보는 세상 여유로운 오리의 유영은 사실 물 속 바쁜 발길질 덕분이라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저도 다음주 월요일은 회사에 연차를 내고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 달콤한 3일간의 유영을 위해 오늘도 회사에서 바삐 손과 발을 움직입니다. 건물주로 추정되는 빵집 사장님도 한 달 간의 시간을 내기 위해 나름대로 무척 애쓰셨을 거라 믿으면서요.

duck swim
Swimming Duck

남들이 가졌다고 나도 다 가져야 할 필요가 없다. 남들이 써놓은 성공 방정식을 내가 풀 필요가 없다. 그저 나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 그게 진정한 의미의 인생이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중에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회사 점심시간에 잠깐씩 산책겸 종종 찾는 작은 책방이 있다. 교보문고 처럼 대형 도서 유통업체의 십분의 일도 안되는 규모에 책도 엄청 많지는 않다. 오히려 그게 선택의 폭을 좁혀주어 책을

creampp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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