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향을 싫어해서 생오이는 좀처럼 입에 대지 않습니다. 이렇게 음식은 가리지만 책을 고르고 읽는 데 있어서는 편향되지 않는다고 자부합니다. 소설, 인문사회, 자연과학, 경제경영, 외국어까지 나름 다양하게 보는 편인데요. 요즘 문득 '내 소설 취향은 로맨스인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만든 소설책 한 편이 있습니다. 이도우 작가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입니다.
사실 이도우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라는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드라마로도 나온 꽤 유명한 소설입니다. 10대부터 20대까지 이어온 첫사랑의 풋풋한 감정이 참 좋았습니다. 제 책장에 잘 모셔져 있어요.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2004년에 초판이 나왔고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많은 독자들이 찾는 책입니다. 얼마 전에 양장본으로 나온 것을 보고 읽어봐야지 하다가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두께의 압박 때문에 선뜻 첫 장을 펼치지 못했어요. 몇 주전 도서관을 찾았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빌려 읽었습니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가 20대의 사랑이라면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30대의 직장 로맨스라고 짧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 공진솔은 9년 차 라디오 방송작가이고 개편을 맞아 새로운 PD 이건과 함께 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게 됩니다. 독특하게도 이건 PD는 시집을 출판한 글 꾀나 쓰는 사람이라 작가들 사이에서는 불편한 PD로 통하는데요. 자신만의 울타리가 견고한 여주인공과 오랜 기간 이어진 짝사랑의 흔적을 안고 사는 남주인공이 조심스럽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꽤나 흥미롭습니다. 읽다 보면 중간중간 이건 PD가 본인도 마음이 있으면서 공진솔 헷갈리게 하네, 선수인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서도 느꼈지만 이도우 작가는 정말 사람의 감정을 세심하게 잘 표현합니다. 뿐만 아니라 분명 글을 읽고 있는데 머릿속에 그 장면이 그려지는 게 참 신기했어요. 금세 이야기에 몰입이 됩니다. TV 드라마로 보는 것처럼.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세상의 모든 사랑이 무사하기를
특별할 거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랑이야기지만 그럼에도 계속 눈과 마음이 가는 걸 보면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슴속 사랑을 충만히 채워주는 소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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