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이라는 5월, 그 명성에 걸맞게 어린이날부터 어버이날, 스승의 날까지 주변을 바삐 챙겨야 했다. 아이에게는 갖고 싶어 하던 장난감을 사주었다. 부모님 두 분은 경치 좋은 식당에 모셔 식사 대접을 했다. 물론 약소하지만 마음 듬뿍 담은 용돈도 함께 드렸다. 아이 유치원 선생님께는 별다방에서 커피나 음료 드실 수 있는 카드를 보냈다. 이렇게 주위를 챙기면 비록 내 주머니는 가벼워질지언정 마음은 확실히 풍요로워진다. 내가 이렇게 베풀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도 들고, 기뻐하는 모습들을 보면 덩달아 행복감을 느낀다.
내 것을 베풀고 나니(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에너지를 소모해서인지 피로함을 느꼈다. 주변을 돌봤으니 이제 스스로를 챙겨달라 “띠띠띠” 신호 같은 게 머릿속 가슴속 깊은 곳에서 감지된다. 두어달만인가 회사에 연차를 내고 평일 하루 내 시간을 가졌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고작 몇 시간 혼자 유유자적할 수 있지만 그 짧다면 짧은 그 시간마저도 꼭 필요하다.
남들은 출근하지만 나는 회사 안가는 날, 평일 5시 기상 시간에서 30분 늦잠을 잤다. 감기 기운이 있어 그런지 아내가 일어나는 기척도 못 느꼈다. 이불 속에만 있기 아까워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아내가 묻지만 “그냥.” 짧게 대답한다. 쉬는 날이지만 평소 루틴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싶었다. 그렇게 여느 출근 날 아침처럼 아내와 아침을 차려 먹는다.
8시쯤 집을 나서는 아내와 인사를 하고 딸아이 유치원 등원을 챙겼다. 밥 먹이고 얼굴을 씻기고 옷을 입힌다. 이게 물 흐르듯 이루어지는 건 아니고 시계를 보며 아이를 재촉해야 한다. 아빠는 조급한데 느긋하기 그지없는 우리 애기. 그래도 예전보다는 훨씬 성장했다. 밥도 잘 먹고 고양이 세수지만 혼자 얼굴도 닦고 바지 입는 건 이제 일도 아니다. 유치원 가방과 실내화 주머니를 내 오른쪽 어깨에 메고 왼손은 아이의 손을 잡고 유치원으로 향한다. 축 쳐진 여느 때 월요일과는 사뭇 다르게 주변이 환하게 느껴진다. 발걸음도 새털 같다. 아이와 함께 하는 등원 길이 얼마만이던가? 그 동안 뭐 대단한 일 한다고 매일 바쁘게 살았을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내게 배꼽 인사를 하고 2층 교실로 올라간다. 올라가는 중간, 창문 너머 서 있는 나를 보고 아이는 머리 위로 하트를 만들어 날린다. 다른 말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행복하다.
오전에 미뤄 놓았던 일을 처리하고 집에 돌아오니 점심 때다. 집 근처 평일 4시간만 장사하는 국수 맛집에서 비빔국수와 감자전을 포장해 왔다. 입 안 가득 면발을 구겨 넣고 맛을 음미해본다. 회식 때 먹은 비싼 참치회보다 홀로 즐기는 이 소박한 국수 한 그릇이 훨씬 맛나다. 신나게 배를 채우고 소파에 기대앉으니 눈이 스르르 감긴다. 발끝에 닿는 햇살은 적당히 따스한 이불로, 티비 속 소란스러운 세상 얘기는 자장가로 변해 나를 토닥토닥 재운다. 깜박 30분을 앉은 채로 졸다 일어나니 몸과 마음이 개운해짐을 느낀다. 문득 깨닫는다. 나를 돌본다는 건 별게 아니구나!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소소(小小)한 하루가 참말로 값지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오늘 하루 참 잘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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