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10년전쯤 첫직장 뛰쳐나와 받은 퇴직금으로 유럽여행을 떠났다. 과감한 성격은 아니라 혼자 갈 생각은 못하고 여행카페에서 동행을 구했다.
처음 만난 사람과 가까워 지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말수도 적은 성격인데 낯선이들과 여행을?!
그것도 유럽이라는 먼 곳으로 떠날 작정을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주변 지인들에게 인터넷 여행카페에서 생면부지 사람들과 만나 여행을 다녀왔다 말하면
"너가? 정말?"이라는 반응과 함께 의아해 한다.
사람은 여러 기질을 가지고 있다. 주위에서는 대표적으로 부각되는 면만을 보며 그 사람의 성향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대표 기질이 아닌 다른 여러 기질들이 상황에 따라 발현되고 표출되는게 아닐까.
나 또한 내향적인 대표적인 기질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때로는
새로운 이들과 어울리며
낯선 곳에 도달하고 싶은 외향적이고 도전적인 기질이 분명있다.
그 덕에 유럽을 경험할 수 있었겠지.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내가 참으로 대견하다.
왜냐하면 유럽이란 곳은 그때 아니면 갈 수 없었다는 것을 삶을 살아가며 계속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다녀온 후로 재취업 그리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 그 다음해 새 식구를 맞이하게 되었다. 일주일 이상 긴 시간을 뺄 수 있는 여유는 없어졌다.
'아름다운 구속'이란 노래가 어울릴려나.
누가 이런 말을 했다.
"유럽여행은 한번 다녀온 기억으로 평생 되새김질하며 살아가는 것!"
공감 100%의 말이다. 거리도 멀고 비용도 많이 드니 자주 갈 엄두를 낼 수 없다.
10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 로마에서, 베니스에서, 피렌체에서의 기억은 또렷하다.
마치 현실과 멀리 떨어져 꿈을 꾸는 듯 했지만 현실적인 시공간 속의 기억들.
마치 루시드 드림을
한바탕 신나게 꾼 듯 황홀했다.
언제고 다시 여행이 자유로워지는 날이 오면 사랑하는 이들과 꼭 다시 갈 것이다.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얼마나 많이 던지고 왔는데, 한 번은 더 가야하지 않겠는가. 때가 오면 내안에 숨어 있는 강한 결단력의 기질이 불쑥 발현하길 기대해 본다.
PS. 여행가서 찍은 사진을 파일로 저장해 뒀는데,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몇 장 겨우 인화해서 액자에 넣어둔 것만 살아남았다. 내 머릿속 영상을 티비나 빔프로젝터로 영사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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