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너와 같이 산지 벌써 5년도 더 지났구나. 시간 참 빠르다. 내가 정성들여 돌봐주는 것도 아닌데 넌 항상 잎을 활짝 펼쳐 베란다 한 귀퉁이를 잘도 지켜주고 있어. 미안하기도 고맙기도 하다.
처음 우리집에 들어온 날이 기억나니?
직장 상사가 사무실에서 키우던 큰 산세베리아가 새끼 쳤다며 작은 너를 잘라내 신문지에 싸서 나에게 주었지. 회색 신문지에 쌓여있던 너를 집으로 들고와 화분에 넣고 아파트 화단에서 퍼온 흙을 듬뿍 담아줬어. 물 주는 건 내 담당이었는데 자주 잊어버려서 일주일, 길게는 열흘 넘게 안 준적도 많았어. 어찌나 매말랐던지 잎파리가 반으로 말릴 정도였었지. 그럴때면 급한 마음에 밥그릇 한가득 물을 담아 콸콸 적셔주고, 다이소에서 사온 녹색액체가 든 길쭉한 식물영양제를 네 뿌리 옆에 꽂아줬어. '에라 모르겠다!' 말라 죽어버릴만도 한데 하룻밤만 지나면 항상 활짝 잎을 벌려 나를 반겨주었단다.
뛰어난 생명력에 번식력까지 좋은 너는 새끼를 네 번이나 쳐서 동생네, 처제네, 장모님댁, 할아버지댁까지 네 자손을 출가시켰다. 정말 대단해!
너가 그렇게 자손을 번창 시키니 우리집에도 어느새 새 생명이 찾아와 식구가 늘었어. 그 작은 생명은 너를 "정산세"라 부르지. 나와 아이의 성씨 "정"에 산세베리아의 앞 두 글자 "산세"를 붙여 그렇게 부른다.
정산세야, 이제 생각해보니 너도 우리 식구, 가족이였구나. 뒤늦게 깨달은 내가 참으로 한심하다. 너가 묵묵히 네 자리를 지켜주었기에 내가, 우리 가족이 이렇게 건강히 잘 지낼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너를 더 잘 챙길게. 언제나 지금처럼, 두 팔 벌린 듯 활짝 펼친 잎으로 우리를 보듬어주렴. 고맙고 건강하자!
'글쓰기 - 쓸거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Two Different Bosses (0) | 2021.10.30 |
---|---|
늦은 귀갓길의 위로 (0) | 2021.10.18 |
러브레터, 작별의 인사 (0) | 2021.10.02 |
트레비 분수의 기억 그리고 기질 (0) | 2021.09.30 |
야근 (0) | 2021.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