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마켓이라는 중고거래 앱을 사용한지는 4년이 넘었습니다. 그간 중고로 판매한 게 27건이더군요. 이력을 살펴보니 꽤 여러 가지였습니다. 아내의 안 신는 신발, 직구로 샀던 분유, 아이 장난감, 유모차, 책...
최근에 또 당근 중고 거래를 했어요. 1년 정도 사용한 블루투스 이어폰입니다. "갤럭시 버즈 프로" 전자기기에 나름 얼리어답터인 아내가 작년 초부터 블루투스 이어폰을 써보더니 좋다고 했어요. 저는 계속 유선 이어폰을 쓰고 있었는데 휴대전화를 바꾸면서 유선 이어폰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블루투스 이어폰을 썼더니 편하긴 했어요. 그런데 갤럭시 버즈의 경우 사용하다 보니 귓속에 너무 밀착이 되어 불편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결국 애플 에어팟으로 갈아탔습니다. 안 쓰게 된 갤럭시 버즈를 처음 샀던 가격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당근 마켓에 올렸어요.
하루 이틀 지났을까 구매자가 나타났습니다! 퇴근 후 7시반에 약속 장소인 지하철역 근처로 갔어요.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보이긴 했는데 선뜻 가서 말 걸기는 뭐해서 당근 마켓 채팅창에 "도착했어요. 네이비 코트."라고 알렸습니다. 얼마 안돼 그 아저씨가 오셔서는 갤럭시 버즈 당근 거래하러 오신 분이냐 말을 거셨어요. 저는 맞다고 하며 물건을 꺼냈는데 갑자기 어디 커피숍이라도 들어가 자시는 거예요. 저의 어찌할 바 모르는 상태를 눈치채시고는 근처 은행 ATM기가 있는 실내로 들어갔습니다.
본인이 육십 얼마 먹었는데 하시면서 휴대전화를 꺼내셔서는 뭐가 안된다며 제게 봐달라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제가 가지고 나온 이어폰은 주머니에 넣으시는거에요. '들고 튀는 거 아냐?' 속으로 잔뜩 경계하며 겉으로는 침착함을 유지했습니다. 아저씨의 휴대전화는 갤럭시 최신형 플립이었습니다. 잡다한 광고 어플이 많이 설치돼 있어 삭제해 드리고 직접 하실 수 있게 어디로 들어가서 해야 하는지 천천히 설명해 드렸어요. 이어폰도 바로 사용하실 수 있게 연결시켜드리고요. 갑자기 주머니에서 또 다른 휴대전화를 꺼내셨습니다. 그건 애플의 최신형 폰이었어요. 저는 아저씨께 여쭈었습니다. "혹시 사업하세요?" 아저씨는 정확한 대답은 안 하시고 여러 가지 일을 한다고만 대답하셨어요. 아이폰에도 갤럭시 버즈를 연결하고 싶다하셔서 시도는 했는데 저도 애플은 써본 적이 없어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렇게 은행 ATM기 앞에서 30분을 있었어요. 아이폰과 갤럭시 이어폰 연결을 안 되겠다 잘 모르겠다 하고 일단 제가 판매한 이어폰의 값을 받았습니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시는데 현금이 꽤 두둑해 보였어요. 돈을 받고 인사하고 집에 가려는 저를 잡아 세우셨어요. 아저씨 손에 이끌려 빵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가족들 줄 빵을 골라보라 하시는 겁니다. 저는 괜찮다고 몇 번 사양을 했는데도 말이죠. 본인이 시간을 많이 뺏은 거 같아 빵이라도 사주고 싶다하셨어요. 어쩔 수 없이 뽀로로 빵과 제가 좋아하는 크림빵 하나를 집었는데, 그걸로 되겠냐며 하나를 더 계산대에 올려놓으시더라고요. 빵이 든 봉투를 손에 들고 그 아저씨와 헤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갤럭시 이어폰과 아이폰 연결 못 시킨 게 마음에 걸려 어떻게 하면 되는지 검색을 했습니다. 그걸 캡처해서 아저씨께 "이렇게 해보시면 됩니다~!" 문자를 보냈어요.
집으로 돌아온 저에게 아내는 당근하러 갔는데 이렇게 늦게 오는 건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어요. 27번의 중고거래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거래를 했다며 웃었습니다.
아저씨게 보낸 문자에 답장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다음 날도 아직까지도.
조금 궁금하네요. 잘 사용하고 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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