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에는 업무 총량의 법칙이 존재합니다. 평일 5일 중 하루를 연차 내고 쉬면 그 하루만큼의 업무가 남은 4일에 분배되거나 연차 다음날 쏟아집니다. 다음 주 4일간의 꽤 긴 추석 연휴를 앞두고 벌써부터 무거운 업무 총량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매월초는 원래 처리할 업무와 서류가 많은데 거기에 연휴 대비해서 미리 해둬야 하는 일들까지 제 발목을 잡고 집에 못 가게 합니다. 그래서 이번 주는 3일이나 야근을 했어요. 아침 8시 반부터 10시간 넘게 컴퓨터와 씨름을 하다 보니 눈이 뻑뻑하고 뒷목에 통증이 밀려옵니다. 동료들은 먼저 퇴근하여 넓은 사무실이 적막하기 그지없어요. 조용한 걸 좋아하긴 하지만 퇴근시간 이후에 홀로 남아 야근하며 느끼는 적막은 싫습니다. '여기서 뭐하나? 나는 누구지?' 자기 성찰의 물음들만 자꾸 떠오르거든요. 요 며칠 자주 그랬습니다. 그럴 때면 '내 그릇에 맞는 곳이 여기겠거니, 그나마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거지, 특별한 기술도 뭐도 없는데 이보다 더 나은 곳을 쉽게 찾을 수 있겠어...' 하며 오늘도 고생했다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이 정도면 됐다 싶을 정도까지 일을 정리하고 짐을 챙겨 퇴근하려고 사무실 불을 껐어요. 순간 창 밖 풍경이 눈에 들어와 잠시 감상 좀 했습니다. 밤하늘 구름들 사이로 환하면서도 은은하게 빛나는 달과 그보다 더 밝은 도심의 불빛에 시선을 빼앗겼어요. 저기 보이는 건물 사무실에도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위로가 되는거 같기도 했고요.
멀리서 보는 도시의 야경은 썩 아름답습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팍팍한 삶과 치열함이 존재하지만요. 반대편에서 제 쪽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다면 저와 같은 생각을 할 것만 같습니다.
고단했던 하루도 어떻게든 지나가고 다음 날이 마냥 행복할거라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날 저런 날이 모여 달처럼 은은한 빛을 내는 거라 믿고 싶어요. 그 믿음을 안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야겠습니다. 오늘 야근을 했으니 내일 할 일은 조금이라도 줄겠죠. 코 앞으로 다가온 추석도 더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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