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올림픽 개폐회식 기획자, '벽을 넘어서'라는 슬로건을 만들고 '굴렁쇠 소년'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사람은?
바로 '시대의 지성'이라는 타이틀로 불리는 故이어령 선생입니다. 올해 2월 향년89세로 영면하셨습니다. 포털사이트 에 나오는 그분의 커리어는 정말 대단합니다. 신문사 논설위원, 대학교수, 문화부 장관 등등 다 읊기도 벅찰 정도입니다.
이런 분의 책을 왜 여태껏 한 권도 읽지 않았을까 자문하다 "짧은 이야기, 긴 생각"란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예전에 KBS 프로그램으로 방영되었던 '80초 생각 나누기' 75편을 모아 엮은 에세이입니다. 작가께서 이렇게 책소개를 하셨다고 해요.
"80초의 8자를 눕혀보세요. 무한대의 기호가 되지 않습니까? 80초의 짧은 순간에 무한하고 영원한 의미를 담은 것입니다"
이 책은 3페이지 분량의 짧은 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짧은 메시지이지만 깊고 넓은 생각을 할 수 있게 이끌어줍니다. 여운도 오래 가고요. 부모님, 이솝우화, 고전, 역사에 이르기까지 소재도 다양합니다. 짧은 글들 SNS 글에 익숙해져 있는 현시대 사람들이 읽기 편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75편의 이야기 중에서 "어미 곰처럼"이 제일 기억에 남았습니다.
곰의 모성애는 인간보다 더 깊고 따뜻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린 것이 두 살쯤 되면 어미 곰은 새끼 곰을 데리고
산딸기가 있는 먼 숲으로 간다고 합니다.
어린 새끼는 산딸기를 따 먹느라고 잠시 어미 곰을 잊어버립니다.
그 틈을 타서 어미 곰은 몰래, 아주 몰래 새끼 곰의 곁을 떠납니다.
언제까지나 어미 품만 의지하다가는 험한 숲 속에서 생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발톱이 자라고 이빨이 자라 이제 혼자서 살만한 힘이 붙었다 싶으면
어미 곰은 새끼가 혼자 살 수 있도록 먼 숲에 버리고 오는 겁니다.
새끼 곰을 껴안는 것이 어미 곰의 사랑이듯이 새끼 곰을 버리는 것 또한 어미 곰의 사랑인 거지요.
눈물이 나도 뒤돌아보지 않는 차가운 사랑을 말이지요.
탯줄을 끊는 순간부터 그 연습은 시작된 것입니다.
어머니에게는 또 하나의 사랑,
얼음장 같은 차가운 사랑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짧은 이야기, 긴 생각中 "어미 곰처럼" 본문 내용-
아이가 있어서 그런지 이런 글을 보면 왠지 더 눈길이 갑니다. 엊그제 세상에 나온 것만 같은데 어느새 걷고 뛰고 말을 하는 걸 보니 시간은 정말 쏜살같아요. 어디 갈 때나 집 밖에서는 항상 손을 잡고 다니는데요. 제겐 세상 행복한 순간입니다. 언젠가는 놓아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 한 켠이 시린 느낌입니다. 점점 다가오고 있는 그날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천천히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작년쯤 어디 책에서 본 구절이 생각나서 적어봅니다.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 세 가지]
하나.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을 보기 위해 캠핑을 떠나지는 못하지만, 아이가 어디든 가고 싶다고 할 땐 빈 가방이라도 들고 문을 나설 것.
둘. 물을 겁내는 아이 앞에서 물에서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물가에 앉아 발을 조심스레 담글 때가지 곁에서 있을 줄 것.
셋. 하늘을 다 가져다 줄 수는 없지만, 높이 날아가는 아이를 보며 미련 없이 손 흔들어 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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