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추천 - 읽을거리

[모순] 양귀자

CreamPPang 2022. 11. 22. 14:12

블로그에 올린 35권의 책 리뷰 중에서 소설은 14권이고 나머지는 인문학이나 실용서입니다. 저의 독서 취향은 소설보다는 인문 쪽에 조금 더 편중되어 있습니다. 

지금 서있는 이곳의 탄생과 기원에서부터 발전하여 어떻게 현재까지 왔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주는 게 인문서입니다. 소설은 마치 멀티버스를 유람하는 것처럼 다른 시공간, 현실인 듯 현실이 아닌 것 같은 타인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소설 속 주인공으로 빙의하여 그 앞에 놓인 선택을 해볼 수 있습니다. 나라면 이렇게 할 거야 이런 삶을 살겠다 미래를 그려보기도 합니다. 독자로서 두 부류 모두 매력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P.304 
작가란 누구인가. 아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답변이라면, 작가란 주어진 인생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현실을 소설 위에 세우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서 한 번뿐인 삶을 반성하고 사색하게 하는 장르가 바로 소설이라고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여일 하게 믿어왔다. 남의 소설을 읽을 때나 내 소설을 쓸 때도 나는 이 기본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주어진 인생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이야기와 새로운 현실에서 얻은 감동을 더불어 나눌 수 있는 세상, 그것이 바로 작가가 꿈꾸는 세상이다.

 


얼마 전 읽은 책은 소설입니다. 첫 발간이 1998년 여름인 양귀자님의 모순입니다. 1998년이면 제가 중고등학생일 때인데 20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니 분명 재밌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단히 줄거리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25살 주인공 안진진에게는 쌍둥이인 어머니와 이모가 있습니다. 10분 차이로 언니가 된 어머니와 동생이 된 이모.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이지만 삶의 모습은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안진진의 결혼 상대인 김장우와 나영규라는 인물도 여러 면에서 상반되는 인물들로서 주인공이 누구를 선택할지 따라가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안진진의 시선을 통해 우리 삶 속에 존재할 수 있는 다양한 모순들을 직면해 보고 답이 없는 어려운 숙제 같은 삶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줍니다.

 

P.51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말을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표현으로 길게 하는 사람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말이다. 그런 말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만이었다.

 

P.127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P.153
불행의 과장법, 그것이 어머니와 내가 다른 점이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진저리를 치는 부분도 여기에 있었다. 그렇지만 어머니를 비난할 수는 없었다. 과장법까지 동원해서 강조하고 또 강조해야 하는 것이 기껏해야 불행뿐인 삶이라면 그것을 비난할 자격을 가자 사람은 없다. 몸서리를 칠 수는 있지만.

 

P.173
삶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 주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P.229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준 주리였다. 인간을 보고 배운다는 것은 언제라도 흥미가 있는 일이었다. 인간만큼 다양한 변주를 허락하는 주제가 또 어디 있으랴.

 

P.296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반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 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가볍지 않은 내용이고 스토리지만 몰입도가 높은 소설이었습니다. 챕터가 끝날 때마다 다음이 궁금해서 계속 읽게 되었습니다. 90년대에는 20대 중반이면 결혼 적령기였고 휴대전화 보급이 되기 전이라 연락을 위해 삐삐나 집전화를 많이 썼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20여 년 전의 생활상을 간접체험해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다시 읽어봐도 좋을 소설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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