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사장님의 인문학 저서를 찾아 읽기를 좋아합니다. 지대넓얕 시리즈부터 열한 계단에 이어 이번에 읽은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까지. 우주의 기원과 인류의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이야기를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제 자신조차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게 사람입니다. 그래도 인문학, 인간과 인간의 근원 문제 및 인간의 사상에 대한 고민과 사유는 참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현실의 찌든 지금, 잠시나마 본질과 존재를 탐구할 기회를 주는 거 같습니다. 답을 찾기 힘든 그런 생각을 즐기는 개인적인 흥미도 있고요.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솔직히 저자에게 묻고 싶습니다. 책 제목을 이렇게 한 이유가 무엇인지. 마지막 장을 다 넘겼지만 그 이유를 희미하게라도 찾지 못했어요. 상당히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제목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책을 펼치면 "나"를 중심으로 관계 맺어지는 타인, 세계, 도구(종교, 체제, 언어), 의미(꿈, 노화, 죽음)에 관한 작가의 사유와 고뇌를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한 번쯤 고민해보고 경험해봤을 것들이라 공감이 많이 됩니다.
250여쪽 되는 책 속에 나오는 여러 글 중에 마음에 드는 걸로 4개 골라봤습니다.
#1 내가 여기 온 이유는 뭘까? 삶을 대하는 태도는?
당신은 수험생이 되기 위해, 취준생이 되기 위해, 노동자가 되기 위해,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 불교도가 되기 위해, 한국인이 되기 위해, 여자가 되고 남자가 되기 위해, 부모가 되고 자녀가 되기 위해, 이념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 관습과 윤리에 순종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당신 앞에 세상은 하나의 좁은 길이 아니라 들판처럼 열려 있고, 당신이 보아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어딘가의 목표점이 아니라 지금 딛고 서 있는 그 들판이다. 발아래 풀꽃들과 주위의 나비들과 시원해진 바람과 낯선 풍경들. 이제 여행자의 눈으로 그것들을 볼 시간이다.
#2 자본주의 안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지위
나는 자본주의가 생각보다 괜찮은 체제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자본주의가 나의 생산자로서의 지위를 박탈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강요한다. 특정 분야의 노동자라는 제한된 역할에 만족하라. 네 전문 분야가 아닌 곳에서는 입을 다물고 소비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라. 나는 이것이 아쉽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놀지 못하고 관계 맺지 못하고 생각할 줄 모르는, 다만 소비해야 하는 존재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3 독서의 순기능
책은 불안을 잠재운다. 당신도 느꼈을 것이다. 세상 사는 일에 치이고 머릿속이 복잡하고 신경이 예민해져 있을 때, 책 읽을 겨를이 없다면 핑계 댈 것이 아니라 도서관에 가서 몇 권을 골라보자. 그리고 안 읽히는 책은 쉽게 지나쳐 보내고, 힘들이지 않고도 읽히는 책을 힘들이지 않고 읽어보자. 그 짧은 시간 동안 마음의 불안은 점차 가라앉고 머릿속의 안개는 조금씩 걷히게 될 것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당신의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체험들의 엉킨 실타래가 푸리며 언어로 정리되기 때문에.
#4 나이듦의 가치
밤이 되는 건 괜찮으나 날이 저무는 것이 아쉬울 뿐이라고.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늙어가는 시간이 쓸쓸할까 걱정될 뿐이라고. 그런데 문득, 부쩍 늘어난 흰머리를 이리저리 들춰보다 말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노을이 지는 것도, 움켜쥐었던 강물이 손가락 사이를 힘없이 빠져나가는 것도, 정성과 집착으로 쌓아 올린 모래성이 바람에 야위어가는 것도, 약속이라도 되어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을 하나둘 잃어가는 것도 생각보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과정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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