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책 추천에 유난히 눈과 귀가 반응하는 편입니다. 이웃 블로거께서 읽고 올리신 책 리뷰를 보고 마음에 들면 메모해 두었다가 찾아 읽곤 합니다. 얼마 전에는 아내가 어디서 "긴긴밤"이란 책 추천을 보더니 읽어보고 싶다 했습니다. 바로 주문을 해서 다음날 책을 받았습니다. 책 표지에 어린이문학상 대상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어린이 문학? 갸우뚱했어요. 어른이 봐도 흥미로울까 하는 물음표가 떠올랐거든요. 허나 그 물음표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긴긴밤”은 어린이 문학이지만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울림이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긴긴밤은 코뿔소와 펭귄의 이야기에 빗댄 우리 삶의 이야기, 수많은 상실과 좌절의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흰 바위 코뿔소 노든은 안전한 삶이 보장된 코끼리 고아원을 떠나 들판으로 나갑니다. “여기, 우리 앞에 훌륭한 한 마리의 코끼리가 있네. 하지만 그는 코뿔소이기도 하지.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군 그래."이 말에 용기를 얻어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납니다. 그 여정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잃었고 앙가부라는 코뿔소 친구도 인간의 손에 떠나보냈습니다. 우연히 만난 펭귄 치부와 얼룩덜룩 반점의 펭귄 알을 보살피며 바다로 향해 갑니다. 왜 바다로 향하는지는, 왜 동행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뚜렷한 목적 없이 바다를 찾아 걷고 또 걷습니다. 치부마저 노든의 곁을 떠나고 머지않아 알에서는 작은 펭귄이 부화합니다. 노든과 그 이름 없는 펭귄은 서로를 의지하며 계속 바다를 찾아갑니다. 힘든 여정과 예상치 못한 위험에 지친 노든을 뒤로하고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군.” 이 말을 품은 채 펭귄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고 결국 검푸른 바다에 도착하게 됩니다.
촉촉한 모래를 밟으며 나는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내 앞의 바다는 수도 없이 부서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저 바닷물 속으로 곧 들어갈 것을, 모험하게 될 것을,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니 제 아이에게도 한 번 들려주고 싶어 졌습니다. 코뿔소가 코끼리와 헤어져 자신의 길을 떠난 것처럼, 펭귄이 코뿔소를 뒤로하고 바다를 향해 홀로 나아간 것 처럼, 언젠가 우리 아이도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앞에 맞닥뜨릴 수많은 긴긴밤과 상실에 조금이나마 잘 맞서는 단단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서요. 이런 걸 조기교육 시킬 방법은 없지만 "긴긴밤"의 주인공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간접 체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긴긴밤”의 책 표지가 여느 책과는 조금 다릅니다. 보통 겉면이 매끈매끈한데 이 책은 어떤 특수 코팅이 되어 있는지 손에서 잘 미끄러지지 않아요. 책 속 이야기가 마음속에 오래 남더니 책 자체도 손에서 오래 머무르는 느낌입니다. 이 느낌을 많은 분들이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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