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 쓸거리

직장 일이 힘들 때 떠올리는 기억들 - 아버지편

CreamPPang 2021. 11. 9. 18:37

아버지의 건강 비결을 꼽자면
백팔배이다. 1, 2년도 아니고 무려 14년째 새벽 4시반에 일어나 하루도 빠짐이 없으시다. 같이 생활하시는 엄마 조차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을 내뱉으며 대단하다 하신다. 몸을 쓰는 활동에는 작심삼일을 당연시 하는 내 유전자 속에 아버지의 저런 굳은 의지의 염색체는 없나보다.
비단 몸을 쓰는 것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버티는 것도 젬병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2~3년에 한 번은 메뚜기 마냥 이직을 했다. 그래도 지금 있는 직장이 만3년을 채운, 내 기준의 근속년수 최고를 찍고 있다.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사라진 시대에서 이직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나 막상 취업시장에서 잦은 이직은 플러스 보다는 마이너스 되는 부분이 크다.

요즘도 슬슬 퇴사와 이직이라는 단어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어딜가든 거기서 거기, 힘든건 똑같다는 월급쟁이의 굴레를 모르는바 아니나 당장의 짐을 벗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성의 끈을 붙잡으라는 목소리가 뇌 깊숙한 곳에서 들려온다. 어릴적 아버지의 기억과 함께.

아버지는 부유함과는 거리가 먼
시골의 1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나셨다.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께서 고생하시며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게 해주셨다. 그런데 아마도 직장에서 고졸이니 대졸이니 따지며 차별을 두었는지 어느 날 방송통신대학에 입학을 하셨다. 아버지 본인께서 결정하신 건 아닐 것이다. 분명 엄마가 추진했을터. 늦깎기 대학생활이 순탄치는 않았을 걸로 보인다. 직장 다니며 공부한다는 것이 인간의 의지로 가능한게 아니다. 그래도 백팔배를 14년째 하는 의지라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결과는 중도포기...3학년2학기를 넘지 못하고 그만 두셨다. 훗날 사정을 들어보니 영어가 발목을 잡은 듯 했다. 중1때인가 아버지 차를 타고 가다 표지판에 Danger라는 단어를 보고 아버지께 무슨 뜻이냐 여쭈었다. 돌아온 대답은 독일식 발음이였는지도 모를 '단거'와 '위험'이란 해석이었다. 뜻이 위험이란 건 알겠는데 발음이 '단거'라니...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중1짜리가 듣기에도 분명 발음이 틀렸다. 하지만 감히 지적하지는 못했다. 아버지도 인간이고 모르시는게 있단 걸 그때부터 깨닫기 시작했다.

방통대는 과제가 많은데다 당시 집에는 컴퓨터가 없어 남의 집 신세를 자주 지셨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못하시는 성격이라 엄마가 옆에서 챙기시느라 두 분 다 고생하신 것 같다. 밤10시 넘어까지 남의 집 컴퓨터 앞에서 과제와 씨름하셨을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온다. 그때 나는 아무 걱정없이 집에서 자빠져 자고 있었겠지. 엄마 아빠는 우리 가족 남 부럽지 않게 돌보고자 남의 눈치 보며 애쓰셨는데 말이다. 고졸 대졸이 대체 뭐길래. 이제 발에 치이는게 대학 졸업장이거늘.

영어에 발목 잡힌 아버지는 그의 생에 몇 번 안되는 중도포기를 경험하셨다. 무언가 시작하면, 하다못해 컴퓨터 카드게임마저 마지막을 봐야 그만두시는 성격에, 학비까지 들이며 시작한 학업의 중도포기라니! 인생의 오점이라 느낄만큼 고통스럽지 않으셨을까. 그깟 대학 졸업장은 못 받으셨지만 25살에 입사한 그 직장에서 25년 근무하고 명예롭게 퇴직하셨다.
25년이라니 정말 내겐 비현실적인 근속년수이다. 내 부모님 세대에서만 가능한 것인가?

아무리봐도 하셨던 일이 재밌거나 엄청 보람이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는데 어떻게 버티셨는지 참말로 궁금하다. 나와 동생을 어깨에 매고 그 무게로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으셨나, 도무지 다른 이유는 떠오르지 않는다. 진지하게 여쭤보고 싶다.

어찌저찌 오늘 하루 근무시간도 끝났고 좀 일찍 퇴근길에 올랐다. 고생할 내일의 나를 위해 과감히 컴퓨터를 끈다. 시작을 위한 마무리는 정말 중요하니까. 이렇게 또 하루를 버텨냈다. 스스로에게 대견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따 집에 가서 아버지께 영상통화를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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