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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 쓸거리 164

아낌없이 주는 나무

내 허리쯤 올 정도로 키가 쑤욱 큰 너, 어딜가도 품에 안겨서만 이동했었는데 이제는 토실한 두 다리로 총총 앞서간다. 좀처럼 뛰지 않는 나도 행여 넘어질까 부딪힐까 네 손을 잡고 같이 총총 거린다. 신나게 달리다 다리 아프다 쉬어야겠다 하면 나는 왼쪽 무릎은 바닥에 오른쪽 무릎은 세워 쪼그려 앉는다. 세워진 내 오른 다리를 의자 삼아 걸터 앉은 너를 보는 그 순간이 참 좋다. 눈을 맞추고 어여쁜 네 얼굴을 머릿속에 마음속에 담다보면 행복도 같이 점점 차오른다. 그러다가 문득 찡해지기도 해. 10년이고 20년이고 내 다리 위에 앉혀 놓고 싶은데 세상이 궁금한 너는 분명 여행을 떠날거란 생각에... 그 시간이 더디게 오길 한없이 공평한 시간에게 빌어본다. 언제고 멀리 갔다가 돌아오면 항상 그 자리에 있을거야..

연차 휴가 - 쉼, 여유

9월엔 추석, 10월엔 2번의 대체공휴일이 있었다. 그 덕에 일을 손에 놓고 쉴 수 있었다. 11월 달력을 보면 시커먼 평일들이 빽빽하게 이어져있다. 답답하다. 남들 일하는 검은 평일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를 내게 주고자 오랜만에 연차를 냈다. 사무실에서는 매일이 바쁘고 정신없음의 연속이다. 연말이 다가오니 더 그런것 같기도 하고. 마침 아내도 볼 일이 있어 같이 연차를 냈다. 겸사겸사 데이트도 할 수 있어 더 좋다. 딸아이는 미안하지만 유치원에 보내놓고. 차 타면 아이 때문에 뒷자석에 타는데 오늘은 내 옆자리에 앉힐 수 있다. 가까운 곳 드라이브라도 가야겠다. 점심은 집 앞 국숫집으로 갈까한다. 이 동네 산지 7년이 다 돼 가는데 한 번도 못 가봤다. 주말 장사는 하지 않는데다 평일에도 11시-1..

Home Sweet Home - 크랙실버

티비 속 세상은 바야흐로 오디션과 경쟁이 난무하는 시대이다. 방송사들 마다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만들어 송출하고 있다. 십 여년전의 슈퍼스타K를 시초로 하여 여태까지 이어온 셈이다. 자본주의의 정체성이 본디 경쟁이다보니 그 속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눈길이 가고 관심이 쏠리는 것일까. 그런데 요즘은 비슷한 포맷이 좀 지나치게 많다는 느낌이 든다. 경쟁을 통해 빠른 성장과 발전을 이룰 수도 있겠지만 꼭 겨루고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야 하는건지는 잘 모르겠다. 평가하는 자와 평가 받는 자의 기준이 모호하고, 음악과 노래를 들려주고 싶은 건지 유명해지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고. 특히 앳된 아이들이 나와 어른 흉내를 내며 노래하는 모습은 왠지 불편하여 얼른 채널을 돌려버린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간직했음 하는 바람..

직장 일이 힘들 때 떠올리는 기억들 - 아버지편

아버지의 건강 비결을 꼽자면 백팔배이다. 1, 2년도 아니고 무려 14년째 새벽 4시반에 일어나 하루도 빠짐이 없으시다. 같이 생활하시는 엄마 조차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을 내뱉으며 대단하다 하신다. 몸을 쓰는 활동에는 작심삼일을 당연시 하는 내 유전자 속에 아버지의 저런 굳은 의지의 염색체는 없나보다. 비단 몸을 쓰는 것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버티는 것도 젬병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2~3년에 한 번은 메뚜기 마냥 이직을 했다. 그래도 지금 있는 직장이 만3년을 채운, 내 기준의 근속년수 최고를 찍고 있다.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사라진 시대에서 이직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나 막상 취업시장에서 잦은 이직은 플러스 보다는 마이너스 되는 부분이 크다. 요즘도 슬슬 퇴사와 이직이라는 단어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직장 일이 힘들 때 떠올리는 기억들 - 엄마편

사회에 첫 발을 내딛고 자주 듣던 말이 생각난다. 직장인은 3, 6, 9 단위로 위기가 온다. 3일에 한번 퇴사생각을 하긴 하지. 6개월에 한번 사람인, 잡코리아를 뒤적거려보지. 9개월에 한번은 아니지만 직장을 뛰쳐나가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지. 하루에도 몇 번씩 퇴사를 떠올리게 하는 위기의 순간이 찾아온다. 지금 일터에서 근무한지 만3년, 험준한 산을 힘겹게 넘고 있다. 불미스런 사건으로 믿고 따르던 팀장님은 좌천되었고 한 동료는 이곳을 떠났다. 두 사람의 일감은 고스란히 내게 왔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제한적이라 혼자 꾸역꾸역 소화하고 있다. 처음엔 즐기지도 않는 술까지 찾으며 심란해 했었다(딱 한번). 그래도 막상 해보니 또 할만하다 느끼기도 한다. 물론 한숨 푹푹 쉬며 버거움을 표현할 때..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제조업 구매팀원으로서 사무실은 서울이지만 본사 겸 공장은 지방에 있다. 매달 한 두번씩은 공장에 내려가 업무를 보는데 가기만 하면 업무가 산더미처럼 불어나는 통에 야근까지 하고만다. 그래서 별로 가고 싶지가 않다. 지난주도 어김없이 퇴근하는 동료들과 인사하며 혼자만 일하는 듯 분주하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 나와 늦게 까지 남아있던 총무팀 직원은 생산현장 인력 수배에 골머리를 앓는 눈치였다. 전화로 오가는 대화중에 내 귀를 살짝 후벼파는 듯한 말이 들려왔고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지금 용역 구하기 힘들어요." "남자 셋, 여자 둘 달라구요?"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 동료가 잘 못 됐다는 건 아니고 이런 사회,경제, 정치체제의 한계라고나 할까... 사..

Two Different Bosses

요즘 내 일터는 혼돈의 시간이다. 한 동료의 잘 못으로 인해 조직 전체가 의심 받고 감사를 받으며 변화의 풍랑을 맞는 중이다. 가히 그 풍랑의 한 가운데 떠있는 돗단배라 할 수 있다. 잘 못을 저지른 동료는 내쫓기듯 퇴사를 했고 그의 업무는 내게 떨어졌다. 예전부터 어렴풋이 언젠간 나한테 올 업무겠지 생각했지만, 이리 급작스레 와 버리니 매우 당혹스럽고 거부감 마저 드는게 사실이다. 완강히 거부한다는 것은 곧 퇴사, 밥벌이를 놓아버린 다는 의미이기에 마음을 다잡고 업무에 임하는 중이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이뤄진 업무 인수인계 덕에 사무실에서의 내 시간은 9 to 6가 순식간에 흐르지만 일이 쌓여가는 속도를 따라잡긴 역부족이다. 중간중간 상사의 도움이나 상의가 필요한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잘 못을..

늦은 귀갓길의 위로

종로3가역에서 5호선 마천행 지하철을 기다린다. 지금 시각은 늦은 밤10시. 평소 이 시간에는 꿈나라 갈 준비를 하고 세 식구가 눕기에는 좀 비좁은 침대 위에서 도란도란 뒹굴뒹굴 하는데 오늘은 참 많이 늦었다. 이유인즉슨 같은 사무실 동료가 부친상을 당하여 조문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다른 부서이긴해도 얼굴보며 지낸게 거의 3년인데 그동안 아버지가 편찮으셨다는 얘기를 이제서야 알게되었다. 주변에 참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이 든다. 퇴근시간, 업무를 일찍 마무리하고 조문 가기로 했는데 화수분 같은 이 놈의 일은 쉽사리 끝을 내보이지 않는다. 겨우 겨우 떨쳐낸 후 영업팀 동료의 차를 얻어타고 나, 우리팀 임대리 데리고 장례식장으로 출발. 누군가의 비고를 아는지 하늘에서는 비가 추적추적 ..

정산세에게(우리집 산세베리아에 쓰는 편지)

안녕? 너와 같이 산지 벌써 5년도 더 지났구나. 시간 참 빠르다. 내가 정성들여 돌봐주는 것도 아닌데 넌 항상 잎을 활짝 펼쳐 베란다 한 귀퉁이를 잘도 지켜주고 있어. 미안하기도 고맙기도 하다.​ 처음 우리집에 들어온 날이 기억나니? 직장 상사가 사무실에서 키우던 큰 산세베리아가 새끼 쳤다며 작은 너를 잘라내 신문지에 싸서 나에게 주었지. 회색 신문지에 쌓여있던 너를 집으로 들고와 화분에 넣고 아파트 화단에서 퍼온 흙을 듬뿍 담아줬어. 물 주는 건 내 담당이었는데 자주 잊어버려서 일주일, 길게는 열흘 넘게 안 준적도 많았어. 어찌나 매말랐던지 잎파리가 반으로 말릴 정도였었지. 그럴때면 급한 마음에 밥그릇 한가득 물을 담아 콸콸 적셔주고, 다이소에서 사온 녹색액체가 든 길쭉한 식물영양제를 네 뿌리 옆에 ..

러브레터, 작별의 인사

“오겡끼데스까? 와따시와겡끼데스!” 90년대 후반 한국에서 흥행한 일본영화 러브레터 속 여주인공의 유명한 대사이다. 중학교 2~3학년때쯤 비디오가게에서 빌려다 본 영화인데 내 인생영화가 되어버렸다. 재밌다는 사람들 입소문 때문에 본 영화는 아니었고 OST가 좋아서였다. 어느 날 우연히 신문에서 영화음악을 소개하는 글을 읽었는데, 유키구라모토가 OST에 작업했고 피아노와 현악기의 조화와 선율이 아름답다고 하길래 왠지 꼭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만 해도 유키쿠라모토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영화에 크게 관심도 없었는데 말이다. 우선 엄마에게 받은 용돈을 들고 음반가게로 가 러브레터 OST를 샀다. 집으로 돌아와 커다란 전축에 테이프를 넣고 한 곡 한 곡 감상을 시작했다. ‘음~평온하고 잔잔하다.’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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